니콘클럽에 잡설로 남겼는 데 그냥 여기다가도 복사해 두기로.
니콘클럽에 쓴 글이라 존대말로 쓰였음.
- 오토오토로부터의 탈피
필름이래봐야 코닥 맥스하고 오토오토 중에 싼 놈만 골라 쓰던 제가, 우연히 아버지의 F3를 만나면서 필름을 이것 저것 만져 보게 됩니다.
카메라가 좋은 놈이이 필름도 좋은 걸 끼워 줘야 될 것 같은 데, 슬라이드 필름이라는 게 뭐에 쓰는 건지를 몰라서 제일 비싸다는 리얼라하고 NPH400을 가지고 몇 번 눌러 보게 되지요. 찍다 보니.. 사진 잘 나옵디다. 오토오토하고 뭐가 다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리얼라로 뽑아 놓으니 확대를 해도 깨끗하고 스캔을 해 봐도 선명합니다.
아.. 그래. 이게 사진이로구나 하며 한참을 리얼라하고 노닥거립니다. 니콘 똑딱이->디카 여러 종류 (-_-) -> F3로 넘어온 상태라 필름 아까워서 막샷은 못 날리고, 아끼고 아끼면서,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몇 장씩 찍어 보면서 즐거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카메라 종류를 막 보다 보니, 어허 요새 나오는 좋은 카메라는 오토 브라케팅이 된다데요. 이런.. F3는 안 되잖아! 하며 짜증 한 번 내고 수동으로 1/3 스탑씩 브라케팅을 해 보았더랬습니다.
결과는.. 세 장이 똑같습니다. -_- 워얼래?
슬라이드에서만 된답니다...
- 네가로부터의 탈피
그래.. 말로만 듣던 슬라이드. 함 해 보자.. 면서도 손이 떨려서 제일 싸보이던 코닥 엑타크롬을 구입했습니다. 엑타크롬으로 한 롤 겨우 마감하고, 충무로까지 가서 두 어시간의 기다림 끝에 받아 들었습니다.
사진관에서 라이트박스에 루뻬를 들여다 볼 자신이 없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와서야 하늘에 대고 대충 한 번 훑어 봅니다. 아하~!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네가야 안녕. 슬라이드야 반갑다. 오늘부터 나는 슬라이드다.
엑타크롬 몇 번 찍어 보고 바로 E100 시리즈로 전환합니다. E100VS, E100G. 실수로 E100VS를 2 스탑 증감 촬영한 후 E100VS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그 선명한 시뻘건 색은 아직도 눈 앞에 아리삼삼합니다.
- 흑백으로의 외도.
G1을 만납니다. 눈먼 돈이 주머니에 있기에, 전도 눈 먼척하고 콘클에 가서 G1을 구했습니다. 슬라이드에서 보여주는 니콘과는 다른 색감에 감탄하고 있는 데, G1으로 흑백을 찍으면 선예도가 쥐긴답니다. 그래서 필름 사던 길에 HP5+도 하나 샀습니다. 동네 다니면서 찍는 데, 꼴에 흑백은 증감이 자유롭고 증감하면 콘트라스트가 또 쥐긴다는 말을 듣고 1600으로 올려서 찍었습니다.
사진.. 예술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뭔가 흑백이라는 느낌이 석였치 않아 그 날 그 한 롤로 흑백은 접고 맙니다. G1이 팔 때 남아 있던 흑백 필름도 다 넘겼습니다.
- 다시 네가로.
장마가 지니 날이 흐려서 슬라이드 들고 나서기는 좀 찜찜합니다. 마누라와 함께 흐린 날에 한 번 나가자고 맘 먹고는 냉장고에서 얼다 녹다 지쳐버린 NPH400을 꺼냅니다. 간만에 네가랍시고 즐겁게 열심히 찍어댔습니다. 슬라이드 한 롤. 네가 400 짜리 한 롤. 현상해서 스캔해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네가의 색깔이 이런거였나? 슬라이드의 강한 발색/ 컨트라스트에 비해, 은은한 맛이 흐린 날씨와 더해서 아주 분위기 있는 풍경을 만들어 줍니다. F80 사고 나서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던 스팟 측광도 제법 눌러 봤는 데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오호. 네가로 이제 돌아가야 하나?
- 또 흑백으로.
인사동에 하루 나갔더랬습니다. 흐린 날씨.. 슬라이드가 당췌 땡기질 않습니다. 다시 HP5 + 를 구해다 F3에 먹였습니다. 인사동 부터 종각까지 동네 풍경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다 담으면서 카메라는 가방 속에 넣어 둔 채 한 두시간 걸어 줬습니다. 종각 국세청 건물 앞에서 한 번 쉬고, 그제서야 카메라를 꺼내 머릿속에 담았던 풍경들 다시 되새김질 하며 온 길을 거슬러 갔습니다. 머릿 속에 담았던 풍경들, 느낌들을 최대한 그대로 F3에 넣어 줄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직 이 필름들은 현상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얻은 짧은 지식에 의하면 필름의 특성들은 이러합니다.
. 슬라이드 : 사진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필름에 맺힌 상으로 얻는다.
. 네가 :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찍는 순간과 인화의 2단계가 존재한다. 사진가는 찍는 순간에만 관여하므로 자기가 의도한 바를 100% 사진에서 얻기 힘들다.
그래서 한동안 슬라이드만 써왔었습니다.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오로지 100% 내 의도만으로 결정하고 판정받고 싶었습니다. 네가로 찍어놓고 스캔/후보정을 통한 제 색감 찾기 말고, 오로지 나와 내 카메라라만으로 원하는 장면으로 만들어 보자는 허영심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100VS, E100GX등을 남용하며 (주머니는 거덜났죠.. ) 사진들을 찍어대고, 때로는 E100Vs에 PL 필터 끼우고 인물사진 찍어 놓고는 내가 왜 이랬더냐.. 하면서 필름 끌어 안고 꺽꺽거리기도 했더랬습니다. E100VS로 찍은 선명한 얼굴의 잡티를 포토ㅅㅑㅍ으로 지우면서 아직 부족하단 말만 되뇌이기도 했더랬습니다. 지금은.. 그 날 셔터 누르기 직전에 필름을 뭘 쓸 지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가방속에 렌즈갯수가 줄고 필름갯수가 종류별로 늘어갑니다.
100장 중에 한 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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