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 25일 월요일

필름에 대해서.

니콘클럽에 잡설로 남겼는 데 그냥 여기다가도 복사해 두기로.

니콘클럽에 쓴 글이라 존대말로 쓰였음.

- 오토오토로부터의 탈피

필름이래봐야 코닥 맥스하고 오토오토 중에 싼 놈만 골라 쓰던 제가, 우연히 아버지의 F3를 만나면서 필름을 이것 저것 만져 보게 됩니다.

카메라가 좋은 놈이이 필름도 좋은 걸 끼워 줘야 될 것 같은 데, 슬라이드 필름이라는 게 뭐에 쓰는 건지를 몰라서 제일 비싸다는 리얼라하고 NPH400을 가지고 몇 번 눌러 보게 되지요. 찍다 보니.. 사진 잘 나옵디다. 오토오토하고 뭐가 다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거나 리얼라로 뽑아 놓으니 확대를 해도 깨끗하고 스캔을 해 봐도 선명합니다.

아.. 그래. 이게 사진이로구나 하며 한참을 리얼라하고 노닥거립니다. 니콘 똑딱이->디카 여러 종류 (-_-) -> F3로 넘어온 상태라 필름 아까워서 막샷은 못 날리고, 아끼고 아끼면서,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몇 장씩 찍어 보면서 즐거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카메라 종류를 막 보다 보니, 어허 요새 나오는 좋은 카메라는 오토 브라케팅이 된다데요. 이런.. F3는 안 되잖아! 하며 짜증 한 번 내고 수동으로 1/3 스탑씩 브라케팅을 해 보았더랬습니다.

결과는.. 세 장이 똑같습니다. -_- 워얼래?

슬라이드에서만 된답니다...


- 네가로부터의 탈피

그래.. 말로만 듣던 슬라이드. 함 해 보자.. 면서도 손이 떨려서 제일 싸보이던 코닥 엑타크롬을 구입했습니다. 엑타크롬으로 한 롤 겨우 마감하고, 충무로까지 가서 두 어시간의 기다림 끝에 받아 들었습니다.

사진관에서 라이트박스에 루뻬를 들여다 볼 자신이 없어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와서야 하늘에 대고 대충 한 번 훑어 봅니다. 아하~!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네가야 안녕. 슬라이드야 반갑다. 오늘부터 나는 슬라이드다.

엑타크롬 몇 번 찍어 보고 바로 E100 시리즈로 전환합니다. E100VS, E100G. 실수로 E100VS를 2 스탑 증감 촬영한 후 E100VS의 광팬이 되었습니다. 그 선명한 시뻘건 색은 아직도 눈 앞에 아리삼삼합니다.

- 흑백으로의 외도.

G1을 만납니다. 눈먼 돈이 주머니에 있기에, 전도 눈 먼척하고 콘클에 가서 G1을 구했습니다. 슬라이드에서 보여주는 니콘과는 다른 색감에 감탄하고 있는 데, G1으로 흑백을 찍으면 선예도가 쥐긴답니다. 그래서 필름 사던 길에 HP5+도 하나 샀습니다. 동네 다니면서 찍는 데, 꼴에 흑백은 증감이 자유롭고 증감하면 콘트라스트가 또 쥐긴다는 말을 듣고 1600으로 올려서 찍었습니다.

사진.. 예술로 나왔습니다. 하지만 뭔가 흑백이라는 느낌이 석였치 않아 그 날 그 한 롤로 흑백은 접고 맙니다. G1이 팔 때 남아 있던 흑백 필름도 다 넘겼습니다.

- 다시 네가로.

장마가 지니 날이 흐려서 슬라이드 들고 나서기는 좀 찜찜합니다. 마누라와 함께 흐린 날에 한 번 나가자고 맘 먹고는 냉장고에서 얼다 녹다 지쳐버린 NPH400을 꺼냅니다. 간만에 네가랍시고 즐겁게 열심히 찍어댔습니다. 슬라이드 한 롤. 네가 400 짜리 한 롤. 현상해서 스캔해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습니다. 네가의 색깔이 이런거였나? 슬라이드의 강한 발색/ 컨트라스트에 비해, 은은한 맛이 흐린 날씨와 더해서 아주 분위기 있는 풍경을 만들어 줍니다. F80 사고 나서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던 스팟 측광도 제법 눌러 봤는 데 잘 나온 것 같습니다. 오호. 네가로 이제 돌아가야 하나?

- 또 흑백으로.

인사동에 하루 나갔더랬습니다. 흐린 날씨.. 슬라이드가 당췌 땡기질 않습니다. 다시 HP5 + 를 구해다 F3에 먹였습니다. 인사동 부터 종각까지 동네 풍경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다 담으면서 카메라는 가방 속에 넣어 둔 채 한 두시간 걸어 줬습니다. 종각 국세청 건물 앞에서 한 번 쉬고, 그제서야 카메라를 꺼내 머릿속에 담았던 풍경들 다시 되새김질 하며 온 길을 거슬러 갔습니다. 머릿 속에 담았던 풍경들, 느낌들을 최대한 그대로 F3에 넣어 줄려고 노력했습니다. 아직 이 필름들은 현상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얻은 짧은 지식에 의하면 필름의 특성들은 이러합니다.

. 슬라이드 : 사진가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필름에 맺힌 상으로 얻는다.
. 네가 : 사진을 얻기 위해서는, 찍는 순간과 인화의 2단계가 존재한다. 사진가는 찍는 순간에만 관여하므로 자기가 의도한 바를 100% 사진에서 얻기 힘들다.

그래서 한동안 슬라이드만 써왔었습니다. 사진이라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오로지 100% 내 의도만으로 결정하고 판정받고 싶었습니다. 네가로 찍어놓고 스캔/후보정을 통한 제 색감 찾기 말고, 오로지 나와 내 카메라라만으로 원하는 장면으로 만들어 보자는 허영심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100VS, E100GX등을 남용하며 (주머니는 거덜났죠.. ) 사진들을 찍어대고, 때로는 E100Vs에 PL 필터 끼우고 인물사진 찍어 놓고는 내가 왜 이랬더냐.. 하면서 필름 끌어 안고 꺽꺽거리기도 했더랬습니다. E100VS로 찍은 선명한 얼굴의 잡티를 포토ㅅㅑㅍ으로 지우면서 아직 부족하단 말만 되뇌이기도 했더랬습니다. 지금은.. 그 날 셔터 누르기 직전에 필름을 뭘 쓸 지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젠 가방속에 렌즈갯수가 줄고 필름갯수가 종류별로 늘어갑니다.

100장 중에 한 장을.... 위하여!

2005년 7월 17일 일요일

드디어... 사진을 찾았다.

얼마만인가. 5롤 중에는 아마 거의 2달이 다 되어 가는 사진도 있었던 것 같다 .6월 초에 갔었던 남이섬 사진을 이제서야 찾았으니. 6주 정도는 묵혔었다.

슬라이드 3롤. 네가 2롤. 한 롤은 혁래형 결혼식.

일단 SB-16의 성능에 깜짝 놀랐다. 비교적 먼 거리에서 천장 바운스를 시켜서 거의 안 나올 거라고 예상했던 사진들도 굉장히 선명하고 깔끔하게 잘 나왔다. SB-17에 댈 게 아닌갑다. F3뿐 아니라 F80과의 궁합도 잘 맞는 것 같다아 맘에 든다.

오래간만에 네가를 끼웠던 부천 촬영소 방문. 매번 슬라이드에 매트릭스 측광만 쓰다가, 네가에다가 ISO400, 스팟 측광을 걸어 놔서 잘 나올라나 많이 걱정을 했었는 데 기가 막히는 사진들이 몇 개 나왔다. 8x10으로 인화도 몇 장 맡겼다. 스팟 측광에 한 동안 맛 들여서 지낼 것 같다. 인물 사진엔 역시 매트릭스보다 스팟이..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었던 남이섬 사진들은 어두운 곳에서도 PL 필터를  빼지 않고 찍은 데다가, 전부 매트릭스 측광을 해 놔서 사진이 들쑥 날쑥이다. 아쉬운 것들이 많은 데, 기찻길에서 찍은 성주 사진이 그나마 체면을 차렸다.


어제는 HP5를 끼운 F3와 함께, 사진 나오기 기다리면서 인사동에서 몇 장. 안국역부터 인사동 - 종로 2가 - 종각까지 걸어 가면서 찬찬히 찍을 것들을 눈에 담아 둔 후, 다시 천천히 거슬러 오면서 되새김질하면서 찍었다. 작품이 몇 개 나올 것 같아 내심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중이다.



어제 오늘 사이 꼴볼견 몇 가지. 지하철 안에서 혼자 핸드폰 카메라 꺼내 들고 소리 내가면서 열심히 찍어 대던 녀석. 아마 나를 몇 번 찍은 모양인 데, 나하고 눈이 마주쳐서 한 동안 째려 봐 주고 있었다. 쫓아가서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는 데, 남 생각 않고 그렇게 찍어대는 거 영 맘에 안 든다.

하나 더. 오늘 성주와 상동 공원 한 바퀴 돌고 오는 길. 아마 대충 보기에 캐논 마크 2 같고, 렌즈도 85mm이상의 고급.. 대형 뻘건 줄 렌즈를 끼우고는 공원 한 가운데에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고 서서, 마치 사냥하듯이 주변 사람들을 향해 셔터를 날려 대던 녀석. 마치 사진은 스포츠고, 사진은 이렇게 들고 찍어야 되고, 사진은 이렇게 폼 나게 공원 한 가운데 서서 모든 이의 시선을 받으며 찍어야 한다는 걸 온 몸으로 보여주겠다는 듯한.. 강한 의지를 표현하려던 녀석. 재수 뽕이다. -_-ㅗ 주변에 있는 사람들 다 불편하게 해서 저만치 밀어낸 다음에 초망원 줌렌즈로 쭈욱 끌어서 찍어야 속이 시원한가? 정말 사람을 찍고 싶으면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그 안에서 찍어 주던가. 돈지랄 했으니 이렇게라도 티를 내야겠다는 듯한.. 재수 없던 녀석.



덥다. 장마도 끝나려나 보다.  

2005년 7월 1일 금요일

무엇으로 찍을 것인가.

크게 세 가지의 담는 도구가 존재한다.

흑백 필름. 칼라 네가티브. 칼라 포지티브.

또한 이에 대해, 사진찍기라는 행위는 다시 찍기, 현상하기, 인화하기의 3단계로 나뉜다.


흑백 필름 - 현상과 인화의 묘가 있다. 그래서 사진찍기의 모든 과정을 다 써야 제 작품을 만난다.
                필름의 관용도도 상당해서, 찍고, 현상하고, 인화하는 모든 과정을 다 겪을 수 있다.

칼라 네가티브 - 현상과 인화의 묘는 있다. 하지만 개인이 하기는 여러가지로 힘들다고 한다.
                      관용도도 좋아서, 현상할 때에도 여유가 좀 있고, 마찬가지로 인화하는 과정에서도 네가티브를 반전시켜야 하므로 인화하는 기술에 따라 사진이 많이 다르게 나온다고들 한다.

                      하지만 개인이 현상 및 인화를 할 수 없으므로, 반대로 말하자면 개인은 칼라 네가티브 필름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자신의 원하는 바를 절대로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될 수 있겠다.

                      이건 덤으로 붙는 말이지만, 어느 사진잡지에선가 모든 프로페셔널들이 컬러 포지티브만 찍어서 충무로의 인화기술이 낮아지고 있다는 우려 섞인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네가티브는 찍는 게 끝이 아니고 현상 및 인화에 많은 공을 들여야 작품이 나오는 데, 사진가들이 현상/인화는 신경쓰지 않고 컬러 포지티브만 고집하는 추세가 되어서 인화하는 기술이 낮아졌다던가.. 어쨋거나 그래서 컬러 네가만 쓰는 프로들도 있다 하고, 충무로 어딘가에는 국내에서 네가 인화의 1인자로 꼽히는 가게도 있다 한다.

칼라 포지티브 - 현상과 인화에서 조작이 쉽지 않다.
                     요새는 스캔해서 디지털 보정을 하면 되지만,
                     실제로 필름에 양화가 찍히게 되므로, 음화->양화의 반전과정에서 조작이 가능한 네가티브와 달리 인화에서의 보정이 불가하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 찍을 때 자신이 의도했던 바를 가장 손쉽게 만지게 되는 필름이다.


다시,

찍기-현상-인화 를 모두 맛보면서, 자신의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사진 한 장을 만들겠다면. 흑백 네가.
찍기 하나만으로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 보겠다면. 칼라 포지티브.
찍기-현상-인화 를 모두 맛보기 위한 노력을 다 해서 칼라 한 장을 만들겠다면. 칼라 네가.
아무 생각없이 찍어도 좋은 사진을 맛보고 싶다면. 칼라 네가.


나는,

암실을 만들 재주도, 능력도, 열정도 부족해서.
한 장의 실패한 사진을 두고 찍기, 현상, 인화 중 어디가 잘 못 되었는 지 고민하기도 싫어서,
혹은 한 장의 실패한 사진을 두고 현상소 잘못인 지 나의 잘못인 지 고민하기도 싫어서,

인생 한 방. -_-b 칼라 포지티브.

셔터가 닫히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보정 따위 없다. 환등기와 루뻬가 모든 것을 말해 줄 뿐.




그래도.. 지금까지 사진들, 비교적 괜찮았다.



오늘같이 비오고 우중충한 날엔 400짜리 흑백 필름 하나 낑구고 1600에 맞춰서 시내 스냅샷 찍는 것도 재미있을 건 데..

올 여름 프로젝트는 한강 다리 야경 촬영으로 방금 결정!  (뭐냐 ㄸㅡㅇ금없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