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17일 화요일

소통의 도구



가족들이 보면 기겁을 할 사진이지만.

95년에 혼자 떠났던 배낭여행의 흔적 중 하나. 불행히도 그 앨범과 필름들은 나의 게으름덕에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지만, 저렴한 스캐너로 스캔한 낮은 화질들의 파일이 그나마 몇 개 남아 있어 위안이 된다. 그 사진들 중 하나. 니스의 해변에서, 어설프게 폼을 잡고 담배를 한 모금.

혼자 배낭여행을 준비하면서 참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담배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한국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흡연이 굉장히 자유로워서, 기차에도 흡연석이 마련되어 있고 식당이나 길거리에서 남여노소를 불문하고 담배를 물고 있는 모습들이 굉장히 쉽게 목격된다고. 덕분에 한국에서 나온 여성 배낭여행객들이 아무데서나 맘 편히 담배를 피우다가 같은 한국 여행객들에게 때아닌 봉변을 당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담배가 비교적 비싼 편이니 면세점에서 듬뿍 사서 나가라거나, 혹은 외국 애들이 담배 달라고 요청할 때도 있을 테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둥.

그래서 꼴에, 어린 마음에, 소통의 수단으로써 준비했던 게 담배였다. 한국에서 사서 나갈 수 있는 담배의 양은 딱 2보루. 스무갑. 이백개피. 한 달간의 여행 기간동안 두 보루면 적은 양은 아니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든 담배를 더 들고 나가려고 고생들을 했었다. 심지어 여행이 끝날 때쯤 된 사람들은 새로 온 여행자들에게 고추장과 한국담배의 트레이드를 요청하기도 했었으니까. 나는 부담없이 들고 나간 2보루의 담배를, 외국인들과의 소통의 도구로 활용하기로 했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 외국인들. 특히나 유럽의 Compartment형 객실에 타게 되면 꼬질꼬질 냄새 풍기는 외국인 배낭여행객들에게 한 두마디씩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들을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몇 마디 인사가 오가고 나면 나는 여지없이 배낭을 열어 담배 한 갑을 건넸다. 한국에서 가져온 거라고. 기념삼아 드릴 테니 피우시라고. 어찌 보면 참 무모하고 답답해 보이는 짓이기도 했던 것이, 외국인이 갑자기 선물이랍시고 꺼내는 담배 한 갑이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당환스럽기도 했을 것이기도 했거니와, 심지어 담배를 안 피운다는 사람들에게도 우악스럽게 손에 쥐어 주면서 그냥 가지시라고 들이대는 짓들을 반복해서 했었으니까. 한국에서 나오는 예쁜 엽서나 펜등을 준비해서 가는 사람들도 많았었는 데 나는 도대체 왜 담배를 선택했었던 것인 지.

어쨋거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던 때도 한 번 있었으니, 한국 사람 네 명과 한 칸에 타게 되었던 어린 독일애들 두 명. 영어를 못 하던 애들이라 고등학교 때 배웠던 되지도 않는 독일어와 영어, 만국 공통 바디 랭귀리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시도했지만 양 측 다 언어의 장벽 앞에 속수무책이기는 마찬가지였던 때. 나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띄우며 배낭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던 담배를 두 갑(씩이나!) 꺼내어 그들에게 건네었고, 그들은 그 담배를 받아들고 한 동안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더랬다. 글쎄, 그네들이 무슨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지는 나로써는 알 수 없는 바이고 그 담배 두 갑이 가져온 효과에 대해서도 그다지 긍정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겠지만, 어쨋든 그네들은 약간은 호의적인 태도로 기차를 타고 가는 내내 기차 밖으로 지나치던 풍경들에 대해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다. 라인강, 로렐라이 언덕, 빙엔의 쥐탑 등등. 글쎄, 그게 내가 제공한 소통의 도구 덕분이라고 믿는 건 좀 무리일까.

잡다하게 말을 풀어 놓은 건, 오늘 만난 한 웹사이트 얘기를 하려고.

http://tcat.pe.kr/v05.journey.htm?page=25

아마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인 듯 싶은 데, 폴라로이드로 사람을 찍어 주고 그 사람이 그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을 다시 찍었다. 대단히 참신한 아이디어는 아닐 지도... 오랜 사진의 역사 속에 저렇게 사진을 찍은 사람들은 무수히 많았겠지만, 저 웹사이트의 주인은 그 사진 옆에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짧게 남겨 두었다. 혼자 떠나면 자칫 자폐증 증상을 보이기 쉬운 외국 여행에서, 저 사람은 사진을 소통의 도구로 삼아 사람들과의 대화를 만들어 간 모양이다. 특히 그 중에 이 이야기 는 정말 짜릿한 느낌을 주고 있지 않은가.


말의 물꼬를 터 줄 수 있는 소통의 도구. 그게 담배가 되었든 사진이 되었든 혹은 말이 되었든 간에, 그 도구를 손에 하나 들고 있는 건 살아가는 데 참 긴요한 도구이고 재주이고 축복인 듯 싶다.


사진은 카메라라는 기계하고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2006년 10월 7일 토요일

RF 카메라의 단점

RF 카메라는 Range Finder 카메라... SLR 이 Single Lens Reflection의 약자로써 실제로 필름에 찍히는 상을 그대로 거울을 통해 반사시켜 뷰파인더로 보여 주게 되어 있는 데 반해, RF의 경우는 필름에 상을 맺게 해 주는 렌즈와 사용자가 상을 보는 렌즈가 다르다. 이로 인해 SLR에 비해서 몇 가지 단점들이 존재하는 데.

1. Parallax 문제

시차 문제다. 실제로 필름에 맺히는 상과 사용자가 뷰파인더를 보는 상이 달라서 시차가 생기고, 이로 인해 사진가는 자기가 원하는 상이 필름에 정확히 찍히는 지 확인하기가 불가능하다. 가로로 놓고 찍을 때는 그래도 티가 나지 않는 편인 데, 세로 구도에서 근접 촬영을 하면 눈에 뜨인다. 사람을 세로 구도로 정면에서 찍었는 데 실제로 나온 사진은 약간 좌/우측으로 몰려 있으며 약간 돌아서서 찍힌 사진이 나오게 된다.

2. 접사 불가

접사 불가... 라고 까지는 할 수 없겠고, 물론 다양한 보정장치들을 이용해서 접사가 가능은 하겠지만. SLR처럼 렌즈 하나만 사면 바로 접사할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Parallax문제때문에 일정거리 이하로는 카메라 자체가 촛점을 잡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Leica나 Voigtlander의 카메라들은 대략 0.7m 정도의 최소 초점 거리를 가지고 있다. 그 안 쪽으로는 아무리 좋은 접사 렌즈를 구했다 해도 (물론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카메라 바디에서 촛점을 맞출 수 없으므로 대충 눈대중으로 찍어야 한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다양한 보정 장치를 이용해서 접사가 가능하기는 하다.

3. 뷰 파인더의 불편함

뷰 파인더... SLR의 경우는 실제로 필름에 맺히는 상이 그대로 뷰파인더로 들어오지만, RF는 이 놈이 따로 놀다 보니 영 어렵다. 내가 50mm렌즈를 쓰다가 90mm 렌즈로 바꿔 끼우면, 뷰 파인더도 마찬가지로 90mm 용으로 맞춰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90mm 렌즈의 화각을 뷰 파인더에서 가늠할 수가 없어 구도를 잡을 수 없다.

많은 RF 카메라들은 35 / 40 / 50/ 75/ 90mm 초점거리에 대한 뷰 파인더를 지원한다. 물론 이 때의 지원은 SLR처럼 전체 뷰파인더가 해당 화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고, 뷰 파인더 안에 해당 화각에 대해서 박스표시가 보여져서 사용자가 구도를 잡는 데 용이하게 해 주는 정도다. 이렇게 해 놓고 쓰다 보니 90mm 렌즈 이상의 중망원 렌즈등을 끼우고 촛점을 맞추려면 제 아무리 시원한 뷰 파인더라고 해도 SLR 보다는 조금 답답할 게다.

RF 카메라 바디의 뷰파인더에서 해당 화각을 지원하지 못 할 경우, 소위 게눈 파인더라고 불리는 외장형 뷰 파인더를 플래쉬 마운팅 슈 에 꽂아서 사용한다. 물론 parallax 문제는 더 심각해 진다. 더구나 구도를 잡기 위해서는 게눈 파인더를 보고, 촛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RF카메라의 뷰 파인더를 이용해야 하는 심각한 불편함이 발생한다.

4. 망원 렌즈의 부재

망원렌즈가... 거의 없다. 있다 해도 뷰 파인더가 그 모양이라 촛점 맞추기가 쉽지 않다.

5. 비싸다

이런 단점들을 품고 있으면 SLR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거나 단종될만도 한데, 도리어 더 비싼 가격에 장수하면서 잘 팔리고 있다.


음... 갑자기 RF 카메라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는 이유는...?

가지고 싶어서 -_-